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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천 정치범수용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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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

개천 정치범수용소는 평안남도 개천시 인근에 위치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로, 1959년에 설립되었다. 약 155km² 면적에 달하며, '교화 불가능'으로 분류된 정치범들을 격리 수용하는 목적으로 운영된다. 수감자들은 강제 노동, 고문, 열악한 식량 환경 등 심각한 인권 침해에 시달리고 있으며, 탈출에 성공한 신동혁의 증언을 통해 수용소의 실상이 국제 사회에 알려졌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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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천 정치범수용소
기본 정보
유형수용소
위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개천시
상세 정보
다른 이름개천 정치범수용소
운영자알 수 없음
관련 기관알 수 없음
설립일알 수 없음
폐지일알 수 없음
운영 여부알 수 없음
수감 원인알 수 없음
수감자 수약 1만 5천명
사망자 수알 수 없음
주요 수감자알 수 없음
웹사이트알 수 없음

2. 위치

개천 제14호 관리소는 1959년[1][24]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개천시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설립되었다.[24] 수용소의 남쪽 경계는 대동강 중류와 맞닿아 있으며, 강 북쪽에 있는 부락산의 일부도 수용소 구역에 포함된다.[17][2] 대동강 남쪽 건너편에는 북창 제18호 관리소가 위치하고 있다.[17][2] 위성 사진으로 확인된 수용소의 총 면적은 약 155km2로,[2][17] 이는 서울특별시 면적의 1/4 또는 개천시 전체 면적의 1/5에 해당하는 규모이다.[17][18]

3. 현황

관리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"교화가 불가능"하다고 분류한 정치범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[24]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된다.[7] 수용소로 보내지는 사람들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관리,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, 그들의 자녀, 수용소에서 태어난 사람, "반정부" 활동에 관여한 혐의가 있는 사람들이다.[8]

수감자들은 한번 관리소에 들어오면 석방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며,[20] 사망할 때까지 고된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.[24] 이들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격리되어 생활하며, 관리소 안에는 수감자들을 위한 막사가 각각 남자, 여자, 청소년별로 분리되어 있다. 약 15,000명 가량의 수감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.[19] 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간수들의 막사와 행정본부 등도 관리소 안에 별도로 존재한다.[19]

수감자들은 광산, 집단 농장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된다.[19] 주로 탄광, 농업, 또는 섬유, 종이, 음식, 고무, 신발, 세라믹, 시멘트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해야 한다. 가축 사육은 수감자들이 동물 사료를 훔치거나 소화되지 않은 곡물을 찾기 위해 동물의 배설물을 뒤질 기회를 주기 때문에 가장 선호하는 작업으로 여겨진다.[6]

4. 관리소 내 인권침해 실태

개천 수용소를 탈출한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, 수감자들은 새벽 5시 30분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장시간의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.[21][9] 이들은 주로 탄광이나 공장에서 고되고 위험한 작업에 투입된다.[21] 심지어 11세 정도의 어린 아이들조차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작업장에 동원되어 노동해야 하며,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도 극히 제한적이다.[22][10]

수용소 내에서는 사소한 규칙 위반조차 구타나 고문으로 이어지며, 심각한 경우에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한다.[23][11][12] 식량 사정은 매우 열악하여, 수감자들에게는 하루에 500g이 채 되지 않는 옥수수밥과 소금에 절인 채소(염장국 또는 염장 양배추)만이 배급된다.[24][4] 이러한 열악한 배급으로 인해 많은 수감자들이 영양실조로 심하게 쇠약해지며, 이가 빠지고 잇몸이 검게 변하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.[4] 매년 수많은 수감자들이 영양실조, 질병, 작업 중 사고, 고문 후유증 등으로 사망한다.[24][11]

극심한 단백질과 니코틴산(비타민 B3) 부족은 펠라그라와 같은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. 생존을 위해 수감자들은 들쥐, 뱀, 개구리, 곤충 등을 잡아먹는 경우가 흔하다.[24][1][11] 특히 쥐고기는 펠라그라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.[1] 그러나 수용소 규칙상 배급된 식량 외에 동물이나 식물을 사냥하거나 재배하여 먹는 것은 불법이며, 적발될 경우 고문이나 독방 감금과 같은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된다.[24][1]

4. 1. 신동혁의 증언

개천 수용소를 탈출한 신동혁은 수용소에서 경험하고 목격한 인권 유린 사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.[24]

  • 신동혁의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자, 그는 서거나 누울 수 없는 비좁은 지하 감방에 갇혔다. 이곳에서 8개월 동안 지내며 고문을 당했다.[25][28]
  • 고문 과정에서 신동혁은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발에는 수갑이 채이고 두 손은 묶여 천장에 매달렸다. 간수들은 달궈진 화로를 그의 등 아래에 놓고, 뜨거움에 몸부림치는 신동혁을 갈고리로 아랫배를 찔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.[26] 이 고문으로 신동혁은 등에 심한 화상을 입고 흉터가 남았다.[27] 당시 그의 나이는 14세였다.[28]
  • 탈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신동혁의 어머니 차혜경은 교수형에, 형 신하근은 총살형에 처해졌다.[29][30] 신동혁은 이들의 공개 처형 장면을 강제로 지켜봐야 했다.[28]
  • 피복 공장에서 일하던 중 실수로 재봉틀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, 수용소 간수들은 처벌로서 그의 가운뎃손가락 한 마디를 절단했다.[31]


신동혁은 수용소 내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인권 유린 실태를 다음과 같이 추가로 증언했다.

  • 매년 십여 건의 공개 처형이 집행되는 것을 목격했다.[24] 다른 수감자 김영은 자신이 속한 구역에서만 2년 동안 약 25명이 처형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.[32]
  • 여섯 살짜리 소녀가 옥수수 다섯 알을 훔쳤다는 이유로 간수에게 맞아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.[24]
  • 12살 때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만남조차 통제받았다. 수용소의 아이들은 학업 대신 김매기, 가을걷이, 거름 나르기 등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렸다.[25]
  • 13세에서 16세 사이에는 위험한 건설 공사 현장에 투입되었고, 많은 또래 아이들이 작업 중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을 목격했다. 하루에 네다섯 명, 심지어 한 번에 여덟 명이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.[25]
  • 신동혁의 사촌 누나는 간수들에게 강간당한 후 살해되었으며, 딸의 죽음에 통곡하던 사촌 누나의 어머니 역시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졌다.[33]
  • 수용소 보위 지도원들이 이를 잡는 약이라며 액체로 된 화학약품으로 목욕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. 여자 5명과 남자 7명이 이 약품으로 몸을 닦았고, 한 달 뒤 살이 문드러져 죽어갔다.[28][18]
  • 수용소를 탈출할 때 함께 탈출하던 박용철은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감전되어 즉사했다.[24]


블레인 하든이 집필한 신동혁의 공식 전기 ''14호 수용소 탈출''에서 신동혁은 자신이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탈출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고 주장했다. 그러나 2015년, 신동혁은 이 이야기의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.[13] 그는 하든에게 일부 날짜와 장소를 변경했으며, 자신의 이야기에 일부 "허구적 요소"를 포함시켰다고 말했다. 하든은 책의 서문에 이러한 수정 사항을 간략히 언급했지만, 책 전체 내용을 수정하지는 않았다. 신동혁은 북한에서의 삶 전체를 14호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. 그는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면서도,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상대적으로 덜 가혹한 18호 관리소로 이송되어 수년간 지냈다고 진술했다. 2002년 18호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한 것에 대한 처벌로 14호 수용소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말했다.[14][15]

5. 탈출한 수감자

개천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수감 생활을 경험하고 외부 세계에 그 실상을 알린 사례들이 있다.


  • 신동혁(출생 당시 이름: 신인근)은 1982년 개천 수용소에서 태어나 2005년까지 수감되었다가 탈출한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인물이다.[24][34] 그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 중 형제들이 남한으로 도망갔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왔다.[24][34] 신동혁의 경험은 국제 사회에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인권 실태를 알리는 중요한 증언이 되었다.
  • 김용은 1995년부터 1996년까지 개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이후 북창 정치범수용소로 이송되었다.[19] 그는 아버지와 형이 미국 스파이로 몰려 처형된 사실이 발각되면서 일종의 연좌제로 수감된 것으로 전해진다.[19]

5. 1. 김용

김용은 1995년부터 1996년까지 개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고, 이후 북창 정치범수용소로 이감되었다. 그의 아버지와 형이 미국 스파이 혐의로 처형된 사실이 밝혀지면서, 일종의 연좌제로 인해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.[6] 김용은 개천 수용소 구역에서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약 25건의 처형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.[16]

5. 2. 신동혁

신동혁(출생 당시 이름: 신인근)은 1982년 개천 정치범수용소 안에서 태어났다.[24][34] 그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 당시 형제들이 남한으로 넘어갔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.[24][34] 신동혁은 1982년부터 2005년까지 개천 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.

블레인 하든이 쓴 신동혁의 전기 ''14호 수용소 탈출''에서, 신동혁은 자신이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탈출할 때까지 그곳에서만 살았다고 증언했다.[13] 그러나 2015년, 신동혁은 자신의 증언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.[13] 그는 하든에게 일부 날짜와 장소를 바꾸었으며, 이야기 속에 "허구적 요소"가 일부 포함되었다고 밝혔다. 하든은 책의 새로운 서문에서 이러한 수정 사항을 언급했지만, 책 전체 내용을 수정하지는 않았다. 신동혁은 북한에서의 삶 전체를 14호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아니라고 정정했다. 그는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난 것은 맞지만,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상대적으로 덜 가혹한 18호 관리소로 옮겨져 여러 해를 보냈다고 진술했다. 또한 2002년에는 18호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14호 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.[14][15]

참조

[1] 뉴스 How one man escaped from a North Korean prison camp https://www.theguard[...] 2013-02-04
[2] 웹사이트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: Satellite Imagery of the North Korean Gulag: Kwan-li-so No. 14 Kaechon Overview, p. 209 http://www.hrnk.org/[...] 2012-12-07
[3] 웹사이트 North Korean Human Rights: Prison Camps in 2012... http://www.ned.org/a[...] 2014-10-30
[4] 뉴스 N. Korea's Hard-Labor Camps: On the Diplomatic Back Burner https://www.washingt[...] 2009-07-20
[5] 웹사이트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: Satellite Imagery of the North Korean Gulag: Kwan-li-so No. 14 Kaechon Headquarters http://www.hrnk.org/[...] 2012-12-07
[6] 웹사이트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: The Hidden Gulag (Section: Testimony Kwan-li-so No. 14 Kaechon, p. 48) http://www.hrnk.org/[...] 2012-12-07
[7] 간행물 Prison Camps of North Korea - Camp 14 Kaechon http://www.humanrigh[...] 2015-01-15
[8] 웹사이트 End horror of North Korean political prison camps https://www.amnesty.[...] 2014-01-15
[9] 웹사이트 My Mother is Executed. Yet I am not sad. http://www.dailynk.c[...] Daily NK 2012-12-10
[10] 뉴스 Born and raised in a North Korean gulag https://www.nytimes.[...] 2007-07-09
[11] 뉴스 UN witness describes horrors of North Korea (Anderson Cooper's remarkable interview with Shin Dong-hyuk, who was born in "Camp 14", a North Korean gulag described in a UN Human Rights report) http://www.cbsnews.c[...] 2014-02-18
[12] 웹사이트 "A Glimpse of Horror", Radio Free Asia http://www.rfa.org/e[...] Radio Free Asia 2012-12-07
[13] 뉴스 Prominent N. Korean defector Shin Dong-hyuk admits parts of story are inaccurate https://www.washingt[...] 2015-01-17
[14] 웹사이트 A new Foreword to ''Escape from Camp 14'' http://www.blainehar[...] 2015-01-01
[15] 웹사이트 Author of book on North Korea's founding addresses Shin controversy http://www.nknews.or[...] 2015-03-18
[16] 웹사이트 The Hidden Gulag – Exposing Crimes against Humanity in North Korea's Vast Prison System (pp. 51-52) http://www.hrnk.org/[...] 2012-04-25
[17] 웹인용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: Satellite Imagery of the North Korean Gulag: Kwan-li-so No. 14 Kaechon Overview, p. 109 http://hrnk.org/wp-c[...] 2012-06-01
[18] 뉴스 N. Korea's Hard-Labor Camps: On the Diplomatic Back Burner http://www.washingto[...] 2009-07-20
[19] 웹인용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: The Hidden Gulag (Section: Testimony Kwan-li-so No. 14 Kaechon, p. 37) http://hrnk.org/wp-c[...] 2012-06-01
[20] 웹사이트 UNHCR Refworld: Korean gulag escapee speaks out http://www.unhcr.org[...]
[21] 웹사이트 “My mother is executed. Yet I am not sad.” http://www.dailynk.c[...] The Daily NK 2007-07-03
[22] 뉴스 Born and raised in a North Korean gulag http://www.nytimes.c[...] 2007-07-09
[23] 웹사이트 "A Glimpse of Horror", Radio Free Asia http://www.rfa.org/e[...] 2008-12-01
[24] 웹인용 How one man escaped from a North Korean prison camp http://www.guardian.[...] The Guardian 2012-03-16
[25] 웹인용 North Korea: Political Prison Camps http://www.amnesty.o[...] 2011-11-22
[26] 웹인용 Born and Raised in a North Korean Prison Camps http://abcnews.go.co[...] 2012-03-26
[27] 웹인용 Medical Report and History of Shin Dong-hyuk http://www.northkore[...] 2012-03-26
[28] 웹인용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정치범이었다 http://nkd.or.kr/new[...] 2012-06-01
[29] 뉴스 Born and raised in a North Korean gulag http://www.nytimes.c[...] 2012-03-29
[30] 웹인용 Escape From "Total-Control Zone", North Korea’s Papillon http://www.dailynk.c[...] 2011-04-25
[31] 웹인용 Escapee Tells of Horrors in North Korean Prison Camp http://www.washingto[...] Washington Post 2008-12-11
[32] 웹인용 The Hidden Gulag – Exposing Crimes against Humanity in North Korea’s Vast Prison System (p. 51 - 52) http://hrnk.org/wp-c[...] 2012-04-25
[33] 웹인용 I was a Political Prisoner at Birth in North Korea http://www.northkore[...] Life Funds for North Korean Refugees 2012-04-25
[34] 웹사이트 I was a Political Prisoner at Birth in North Korea http://www.northkore[...] Life Funds for North Korean Refugees (NGO)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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